D#03 MBTI 탐색하기

D#03 MBTI 탐색하기

내가 처음 MBTI를 접하게 된 것은 고등학생 때 진로 탐색 관련 수업 시간에 시행했던 검사 중 하나로서였다. 당시에는 3~6개월에 한 번씩 이런 검사를 학교에서 진행했고, 매 검사는 진지하게 임하였지만 그 결과지를 보는 순간 대부분 까먹곤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에 대해서 검사하고, 분석하는 일이 불필요하다고 느끼던 최근, 회사 슬랙 채널에 한 팀원이 MBTI와 유사한 'SaaS형(!!)' 성격 검사를 공유했다. 으레 그렇듯 또 모든 팀원들이 본인들의 결과 링크를 척척 붙이기 시작했고, 나 역시 그 대화에 끼기 위해서 열심히 검사를 진행했다. 결과는 ISFJ, '용감한 수호자형'이었다.

사실 그 땐 공유만 해 놓고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최근 독서모임에서 인간관계에서 MBTI 중요성을 아주 강력하게 주장하는 팀원에 의해 새삼스레 상기하게 되었다.사실 그 이야기의 시작은 이번에 우리 회사에서 새로 오픈한 구인 포스팅 때문이었는데, MBTI를 통하여 매니저의 성향 혹은 일하는 유형 등을 추측할 수 있기 때문에 같이 일 하게 될 내 MBTI와 잘 맞는 MBTI 유형의 후보자를 구인하면 어떻냐는 이야기였다.

그 자리에선 그냥 뭐 혈액형별 성격, 별자리에 따른 성격같은 연장선상에서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가 핸드폰이 내 대화를 염탐하는지 유튜브 추천 영상에 개그우먼 강유미씨의 MBTI 관련 동영상이 뜨는 것이 아닌가? 그 동영상은 그냥 한 MBTI 유형인 사람의 하루를 묘사하는 것이었는데 댓글에선 아주 사람들이 자기를 불법 사찰하지 말아달라는 둥, 너무 잘 묘사했다고 난리였다. 그리고 난 조심스레 유튜브 검색에 'ISFJ'를 넣었는데.....

ISFJ 성격 해설, ISFJ가 스트레스 받는 상황, ISFJ의 연애, ISFJ와 잘맞는 유형 등등 끝도없이 나오는 ISFJ 관련 동영상을 보며 점점 기분이 불쾌해졌다. '나'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왔는데 이 동영상들을 보니 그냥 'ISFJ'로서 살아온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만의 고유한 특성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그냥 ISFJ 유형의 아주 대표적인 특성들이 대부분이어서 도대체 난 누구일까 하는 생각을 하루종일 하게 되었다. 10대 때도 하지 않았던 '나'에 대한 고민을 30대에 하게 된 것이다.

또 한편으로 얼마전에 보았던 이 기사가 생각났다.

스타트업 CEO 107명 'MBTI' 분석해봤더니..'ENTJ'가 대세

그 때도 이 기사 보고 별 생각 없었는데 이제는 스타트업 CEO 중 ISFJ 형이 없는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스타트업에서 쿨하게 여겨지는 문구는 '허락보다 용서가 빠르다'인데, 이는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성장과 혁신에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게 저 문구는 너무 가혹한 문구이며, 누군가 공동체가 합의한 사항을 깨고 돌발행동을 하면 나는 다시는 그 사람과 신뢰를 가지고 일을 할 수 없다. 이런 나 때문에 회사가 연차에 비해서 너무 무게감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바야흐로 구인 공고에서 시작된 MBTI에 대한 생각은 이제 내가 과연 이 회사에서 대표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 적합한 것인가까지 다다르게 된 것이다!

그나마 이 고민의 일주일 끝 다다른 나만의 'MBTI 만능설' 혹은 'MBTI 결정론'의 탈출 논리는

  • 사람의 성향은 이분법적이지 않고 연속적이라는 것
  • 성격의 유형은 존재하지만 성격 유형에 체력, 수학 능력 등 다른 능력 요소들과 결합되어 최종적으로 표현된다는 것
  • 내 성향 자체는 대표에 부합하지 않을 수 있지만 공동창업자가 ENTP 형으로 아주 창업에 부합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

이다.

또 한편으로는 20대 때는 확연한 E 성향이었다가 창업하고 I 성향으로 바뀌었는데, 이처럼 추후 회사가 조직적으로 성장함에 따라 내 성향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그냥 오늘도 열심히 내 일에 정진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