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01, 블로그 시작하기

D#01, 블로그 시작하기

창업한 회사에 대해서 글 쓰는 일을 꼭 해 보고 싶었습니다.

창업 초기에는 작은 성취도 외부에 알리고 싶은 마음에 글을 쓰고 싶었고, 그 이후로는 회사를 운영하며 답답한 마음을 어딘가에 토로하고 싶어서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냥 저의 삶 속 작은 생각들과 감정들을 기록하고 싶어 글을 쓰고 싶어졌습니다.

저에게 글을 쓰는 일은 수신자가 꽤나 명확한 편지를 쓰는 일과 비슷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저의 글을 볼 수 있는 권한을 조절할 수 있는 서비스만을 고집했습니다. 그렇기에 프리첼을 좋아했고, 그렇기에 싸이월드를 좋아했습니다. 때로는 친한 친구들만 볼 수 있는 글을 남겨서 우리들만의 은밀한 유대감을 형성하기도 했고, 또 때로는 아주 가볍게 글을 남겨서 누구나 볼 수 있게 남겨서 관심을 갈구하기도 했죠. 주변 인간관계에 민감했던 20대 초에는 친한 친구들에게 내 싸이어리를 확인했는지 묻곤 했습니다. 그리고 확인하지 않았다 하면 나에게 관심이 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서운해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유치한 사고방식이었는데, 그만큼 글 쓰는 일에 많은 정성을 쏟았고 저를 사랑하는 이들이 제 글을 봐주기를 진심으로 바랐습니다.

2010년쯤 싸이월드에 친구들이 로그인을 하지 않기 시작했고, 독자가 없어진 공간에서 저의 글쓰기도 멈추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뒤로도 글을 쓰는 시도를 꾸준하게 했습니다. 어렵게 얻은 티스토리 초대권을 이용해서 블로그를 만들어보기도 하고, 비싼 호스팅 비용과 야심 찬 도메인까지 구입해서 워드프레스 블로그를 개설해 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각 채널마다 무언가 제 맘에 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일단 모든 글들이 아무에게나 공개된다는 점이 저로 하여금 솔직한 이야기를 주저하게 만들었고, 그러다 보니 온갖 저만의 은어와 비유로 글을 쓰게 되었던 것입니다. 결국 저조차도 시간이 지나면 제 글을 보고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 오게 되었고, 결국은 흐지부지 관리를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2021년 새해가 밝고 매 년 초 다이어트를 다짐하듯, 또 마음 한 구석에서 내 이야기를 쓰고 싶은 욕구가 올라왔습니다. 이 욕구는 갑작스러웠고, 결국 또 온갖 블로깅 서비스를 찾아보다가 충동적으로 ghost 서비스와 도메인을 구매 해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선 또 6개월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묵혔고, 반 년이 지나 ghost의 글 쓰라는 재촉 이메일에 겨우 마음을 내어 과거에 썼던 창업 이야기를 이 블로그로 이전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여러분이 보고 있는 이 첫 글을 2개월 동안 고민하고 작성하고 있습니다.

더 기발한 기획, 더 멋진 글을 고집하며 텅텅 빈 블로그를 유지하느니 일단 시작을 하겠습니다. 이번은 다를 것이기에.